장면 설명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홀로 낡은 녹음기를 켠 채 회환과 축복, 눈물이 섞인 진심을 쏟아내는 늙은 아버지의 독백.
만석
평생 다림질을 하며 거칠게 살아온 구세대 아버지. 겉으로는 소리치고 화를 내지만, 속으로는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자격지심을 동시에 품고 있다. 감정 표현에 매우 서툴다.
대사 미리보기
셔터가 반쯤 내려간 어두운 세탁소 안.
수십 년 된 다림판 앞에 앉은 만석이 소주잔을 단숨에 털어 넣는다.
그의 투박하고 주름진 손이 테이블 위에 놓인 낡은 카세트 녹음기의 '녹음' 버튼을 꾹 누른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만석이 헛기침을 한다.
만석
(멋쩍고 어색하게 웃으며)
아, 아. 마이크 시험 중. 지연아, 내 목소리 들리냐?
(피식 웃으며)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 놔두고 웬 청승이냐고 하겠지. 아비도 안다. 아는데... 내일 네 화장한 얼굴 보고는 도저히 이 말이 안 나올 것 같아서, 구석에 박혀있던 이 고물 기계를 굳이 꺼냈다.
만석, 소주를 한 잔 더 따라 마신다.
취기가 살짝 오르는 듯 손등으로 입술을 거칠게 닦아낸다.
만석
(조금 들뜬 목소리로)
내일이네. 우리 딸 시집가는 날. 아까 네가 웨딩드레스 사진 보내준 거... 봤다. 참말로 예쁘더라. 니 애미 젊었을 때랑 똑같애. 눈 크고, 웃을 때 보조개 폭 파이는 거. 어릴 때 네가 내 목마 타고 동네 한 바퀴 돌면, 동네 사람들이 다 부러워했는데. 저리 예쁜 딸내미 둬서 만석이는 세상을 다 가졌다고.
만석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지만, 이내 그 미소가 씁쓸하게 굳어진다.
그는 손가락으로 다림판의 해진 모서리를 매만진다.
만석
(미간을 찌푸리며, 자조적으로)
근데 세상을 다 가졌으면 뭐 하냐. 지키는 법을 몰랐는데.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며)
내 딴에는, 남들처럼 떵떵거리고 살게는 못 해줘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밤낮없이 다리미질만 해댔다. 뜨거운 김에 손등이 다 데여도, 그깟 거 찬물에 쓱 한 번 씻고 말았어! 돈 벌어야 하니까! 내 새끼 밥 안 굶기려고!